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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은 것들

눈앞에 있어도 못 보는 이유, 우리는 보고도 왜 놓칠까?

읽는 시간 약 9분

길을 걷다가 친구와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을 지나간 지인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적이 있나요?

“나 아까 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못 봤어?”

이 말을 듣고 나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분명 눈은 뜨고 있었고 그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바로 앞에 있던 사람을 보지 못했을까요?

운전을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특정 표지판을 찾는 데 집중하다 보면 주변에 있던 다른 간판이나 건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들어오는 장면을 모두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어도 못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우리의 주의(Attention)가 가진 한계가 숨어 있습니다.

눈에 들어왔다고 모두 알아차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주변에서 엄청난 양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사람의 얼굴과 옷, 자동차, 건물, 간판, 색깔, 움직임 등 수많은 정보가 계속해서 시야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를 동시에 같은 수준으로 자세히 처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현재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부 정보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친구를 찾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지만 우리는 친구와 비슷한 얼굴이나 옷차림을 찾는 데 집중합니다.

이때 다른 사람들도 분명 시야에 들어오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인식하거나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즉, 눈으로 본다는 것과 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부주의 맹시란 무엇일까?

특정한 대상이나 과제에 주의를 집중하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다른 자극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고 합니다.

이름에 ‘맹시’가 들어가지만 눈에 문제가 생겨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야 안에 대상이 있었음에도 주의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어 그 존재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로 흔히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실험이 알려져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사람들이 공을 주고받는 영상을 보면서 특정 팀이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세도록 요청받았습니다.

그런데 영상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등장해 화면을 지나갑니다.

상당히 눈에 띄는 장면인데도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했던 일부 참가자들은 고릴라의 등장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눈앞에 고릴라가 있었지만 다른 과제에 주의가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큰 것도 정말 못 볼 수 있을까?

이 실험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나는 무조건 봤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체가 얼마나 크냐만이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의 주의가 어디에 향하고 있었느냐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모든 정보를 카메라처럼 동일하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수행하고 있는 목표에 필요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합니다.

패스 횟수를 정확하게 세는 것이 목표라면 공의 움직임과 특정 사람들에게 많은 주의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다른 정보가 충분한 주의를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더 쉽게 놓칠 수 있다

무엇을 예상하고 있는지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친구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친구가 들어오는 모습을 찾고 있다면 출입문 쪽 사람들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장에서 작은 장식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나에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극은 시야에 들어와도 의식적으로 발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

“아까 저기 이상한 거 못 봤어?” 라고 물어보면

“뭐가 있었어?”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주변을 놓치는 이유

일상에서 부주의 맹시를 이해하기 쉬운 상황 중 하나가 스마트폰 사용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메시지를 읽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눈은 스마트폰 화면뿐 아니라 주변 풍경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시지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데 주의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친구가 지나갔는데 못 볼 수도 있고, 평소 잘 보던 가게의 새로운 간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보행이나 운전처럼 주변 상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주의를 다른 곳에 빼앗기는 것이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멀티태스킹을 할 때 놓치는 것이 생기는 이유

“나는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때 우리의 주의가 무한히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길을 찾고, 동시에 휴대폰 알림까지 확인한다면 각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주의가 나뉠 수 있습니다.

특히 두 가지 이상의 일이 모두 많은 집중을 요구한다면 한쪽의 정보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에 깊이 집중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는데 전혀 듣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나타납니다.

지난 9번 글에서 다뤘던 ‘한 가지에 집중하면 주변 소리를 못 듣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시각이든 청각이든 우리의 주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10번의 ‘눈앞의 물건을 못 찾는 현상’과는 무엇이 다를까?

이전에 살펴본 ‘눈앞에 있는 물건을 못 찾는 이유’와 이번 이야기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건을 찾는 상황에서는 찾고 있는 물건의 예상 위치나 모양, 시각적 탐색 방식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주의 맹시는 다른 것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자극 자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에 더 초점을 둡니다.

“분명 찾고 있었는데도 못 찾았다.” 와 “애초에 그것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이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을 많이 놓치고 있다

부주의 맹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시각을 상당히 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면 당연히 알아차릴 것 같고, 바로 앞을 지나간 사람이라면 당연히 봤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세상은 눈에 들어온 모든 정보의 완벽한 복사본이 아닙니다.

그 순간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에 따라 어떤 정보는 또렷하게 인식하고 다른 정보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못 봤다는 사실이 반드시 눈이 나쁘거나 기억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때로는 주의가 이미 다른 곳에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데 왜 못 봤을까?

결국 눈앞에 있어도 못 보는 이유는 우리의 주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동시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뇌는 현재 목표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에 우선적으로 주의를 배분합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예상하지 못한 다른 정보는 바로 눈앞에 있어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누군가

“나 네 바로 앞에 있었는데 진짜 못 봤어?” 라고 말한다면 정말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눈에는 들어왔을지 모르지만 의식적인 주의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알아차리는 세상은 그중 주의가 선택한 일부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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