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나는 특유의 냄새, 어디서 나는 걸까?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뒤 밖으로 나가면 평소와는 다른 냄새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젖은 흙에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풀과 나무가 젖으면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다가 내린 첫비에서는 이 냄새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우리는 흔히 이것을 ‘비 냄새’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물 자체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 냄새가 거의 없는데, 도대체 비가 내리면 그 특유의 냄새는 어디에서 나타나는 걸까요?
흥미롭게도 우리가 비 냄새라고 생각했던 향에는 ‘페트리코르(Petrichor)’라는 이름까지 있습니다.
비 냄새를 뜻하는 ‘페트리코르’
페트리코르는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뒤 비가 내렸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1960년대 호주의 연구자들이 이 현상을 연구하면서 ‘페트리코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냄새가 빗물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가 내리기 전 건조한 기간 동안 식물에서 나온 여러 물질이 토양이나 돌 등의 표면에 쌓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서 이러한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 우리가 냄새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맡는 비 냄새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성분이 있습니다.
바로 지오스민(Geosmin)입니다.
흙냄새의 정체, 지오스민
지오스민은 흙 속에 존재하는 일부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화합물입니다.
이 물질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축축한 흙이나 땅의 냄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의 코가 지오스민 냄새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적은 양이 공기 중에 존재해도 특유의 흙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가 내린 뒤 밖에 나갔을 때 실제로는 여러 종류의 냄새가 섞여 있는데도 우리는 강한 ‘젖은 흙냄새’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흙에 있던 지오스민은 어떻게 우리의 코까지 올라오는 걸까요?
여기에는 빗방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빗방울이 냄새를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
비가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빗방울 하나가 흙이나 작은 구멍이 많은 표면에 떨어지면 그 안에 있던 아주 작은 공기방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 공기방울이 수면 위로 올라와 터지면서 미세한 입자를 공기 중으로 퍼뜨립니다. 이런 작은 입자를 에어로졸(aerosol)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오스민을 비롯해 표면에 있던 여러 물질도 함께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맡는 비 냄새는 단순히 빗물이 흙을 적셔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면서 냄새를 만드는 물질을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비가 냄새를 새로 만든다기보다 땅에 숨어 있던 냄새를 우리 코까지 전달해 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왜 첫 비에서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질까?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릴 때보다 오랜 가뭄이나 맑은 날씨가 이어진 뒤 처음 비가 내릴 때 유난히 비 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조한 기간이 이어지는 동안 땅이나 식물 표면에는 냄새와 관련된 여러 물질이 축적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비가 처음 내리면 쌓여 있던 물질이 한꺼번에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가 계속 내리면 표면에 있던 물질이 이미 상당 부분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처음보다 냄새가 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강렬한 ‘비 냄새’는 장마처럼 계속되는 비보다 오랜만에 내리는 첫 비와 더 잘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기 전에도 냄새가 나는 이유는?
조금 더 신기한 경험도 있습니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밖에 나가자마자
“곧 비 오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유의 냄새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감지하는 냄새는 비가 온 뒤의 페트리코르와 반드시 같은 원인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천둥이나 번개를 동반하는 날씨에서는 대기 중에서 생성된 오존(O₃)과 관련된 냄새가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변하면서 비가 내리고 있는 지역의 공기와 냄새가 먼저 이동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사람에게 정말 ‘비를 미리 맡는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비가 오기 전후로 변하는 주변 환경의 냄새를 감지하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비 냄새가 유독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비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창문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축축한 공기와 흙냄새를 맡으면 괜히 기분이 차분해지거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페트리코르를 똑같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냄새는 기억과 감정에 강하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비 오는 날 경험했던 기억이나 상황에 따라 같은 냄새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는 눅눅하고 불쾌한 냄새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가 맡았던 것은 단순한 ‘비 냄새’가 아니었다
결국 비가 내린 뒤 맡게 되는 특유의 냄새는 빗물 하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흙 속 미생물이 만들어낸 지오스민, 건조한 기간 동안 식물과 주변 표면에 축적된 여러 물질, 그리고 그것을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빗방울의 작용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평소에는 땅과 주변 표면에 머물러 있던 냄새가 비를 만나면서 우리 코까지 전달되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번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면 잠깐 창문을 열거나 밖으로 나가 냄새를 맡아보세요.
그 순간 느껴지는 익숙한 흙냄새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과학이 숨어 있습니다.
비가 냄새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땅의 냄새를 비가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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