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고 싶은 것들 알고 싶은 것들

시작하기 전이 가장 귀찮게 느껴지는 이유

dp001 읽는 시간 약 10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유독 시작하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운동을 하러 나가기 전에는 몸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막상 운동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청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미루다가도 일단 한 구역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다른 곳까지 청소하게 되기도 합니다.

공부나 독서 역시 비슷합니다. 책을 펼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몇 페이지를 읽고 나면 예상보다 쉽게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귀찮아하면서 막상 시작하고 나면 계속하게 되는 걸까요?

이 현상은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동을 시작할 때의 심리적 부담과 시작한 이후의 경험이 달라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1. 시작하기 전에는 실제보다 일이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과정에서 필요한 노력을 예상합니다.

예를 들어 방을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단순히 바닥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행동만 떠올리지 않습니다.

옷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고,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는 과정까지 한꺼번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면 되는 일도 상당히 큰 과제로 느껴집니다.

특히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거나 끝나는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울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면 일을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과제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방을 청소해야 한다’라는 추상적인 목표가 ‘책상 위의 컵부터 치운다’라는 행동으로 바뀌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즉, 시작하기 전에는 전체 과정의 부담을 생각하지만, 시작한 뒤에는 눈앞의 행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동기가 생겨야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맞지 않다

많은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먼저 의욕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할 마음이 생기면 공부하고, 운동할 의욕이 생기면 운동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순서가 반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의욕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행동을 시작하면 작은 성취감을 얻고, 그 경험이 다음 행동을 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접근법 중 하나가 심리치료에서 사용되는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입니다.

행동 활성화는 기분이 좋아지거나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물론 행동 활성화가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인 동기를 만들어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행동과 기분은 한 방향으로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운동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라도 운동복을 입고 가볍게 걷기 시작하면 처음보다 기분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조금 더 걸어볼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동기가 행동을 만들기도 하지만, 행동이 새로운 동기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3. 한번 시작한 일은 계속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는 ‘오브시안키나 효과(Ovsiankina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진행하다가 중단된 과제를 다시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퍼즐을 맞추다가 중간에 멈추면 나중에 남은 퍼즐을 완성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글을 작성하다가 잠시 중단했을 때도 이미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문장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2025년 발표된 오브시안키나 효과와 자이가르닉 효과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도 중단된 과제를 다시 이어서 수행하려는 전반적인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모든 종류의 과제나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현상은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그 일을 계속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미 어느 정도 진행한 과제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과제보다 다음 단계가 명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 시작할 때보다 이어서 진행할 때 심리적 부담이 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4. 자이가르닉 효과와 미완성 과제의 심리

시작한 일을 계속하고 싶어지는 현상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입니다.

이 개념은 완성한 일보다 끝내지 못한 일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다가 가장 궁금한 장면에서 끝나면 다음 이야기가 계속 떠오르는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미완성 과제의 심리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미완성 과제가 완성한 과제보다 항상 더 잘 기억된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2025년 메타분석에서도 미완성 과제의 보편적인 기억 우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중단된 과제를 재개하려는 경향은 관찰되었습니다.

따라서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하고 싶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작한 과제에 관심이 생기거나 다음 단계가 분명해지는 등의 조건에서는 행동을 이어가기 쉬워질 수 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모든 일을 끝내려 하기보다 일부라도 진행해 보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5. 작은 성취감이 다음 행동을 이끌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면 그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책상만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책상이 깨끗해진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책장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공부도 비슷합니다.

어려워 보이던 내용을 한 부분 이해하고 나면 다음 내용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동의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경험은 다음 행동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거대한 성취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운동을 1시간 하지 않아도 10분 동안 걸었다는 경험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몇 페이지를 읽었다는 사실이 다음 독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이면 자신도 행동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질 수 있고, 이런 기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동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행동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목표를 작게 나누기

‘운동하기’ 대신 ‘운동복 입기’, ‘책 읽기’ 대신 ‘책 3페이지 읽기’처럼 목표를 작게 설정합니다.

막연한 과제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뀌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두 번째, 시작하는 시간을 정하기

‘시간이 나면 청소해야지’라는 생각보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책상 위부터 정리한다’라는 계획이 실행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과 행동을 연결하는 계획은 실행 의도를 분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세 번째, 완벽하게 끝내려 하지 않기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5분만 해보겠다는 목표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5분 뒤에 계속할지 결정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번째, 중단할 때 다음 행동을 남겨두기

글을 작성하다가 멈춘다면 다음에 작성할 소제목을 메모해 둘 수 있습니다.

공부를 중단할 때는 다음에 풀 문제를 표시해 둘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시 시작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7. 시작했는데도 계속하기 어렵다면?

물론 모든 일이 시작하고 나면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은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어렵거나 지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거나 해야 할 일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다면 작은 행동을 시작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럴 때는 무조건 계속하려고 하기보다 과제의 양을 조절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가 단순한 귀찮음인지, 실패에 대한 걱정인지, 과도한 피로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미루기 행동이라도 원인에 따라 적절한 해결 방법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행동하기 쉬워지는지 알아가는 것입니다.

시작하기 전의 마음과 시작한 후의 마음은 다르다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보다 많은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 하지 않은 일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필요한 노력을 계산하고, 때로는 실패에 대한 걱정까지 떠올립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추상적인 걱정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뀌고,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거나 다음 단계를 이어갈 계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하기 전에는 귀찮았던 일이 막상 시작하고 나면 예상보다 괜찮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작의 부담을 줄이는 것은 행동을 바꾸는 실용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의욕이 아니라, 의욕이 생길 기회를 만들어 줄 작은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미루고 있는 일이 있다면 완벽하게 해내려는 생각보다 가장 작은 행동 하나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dp001

dp001
함께 보면 좋은 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